이 나무들의 헝클어진 모양새에서 모진풍상과 거칠고 드센 이곳의 환경을 짐작케 한다. 굽이굽이 비탈길을 한 삼십 여분을 올라가자 장백산천지 주차장이라는 곳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백두산 상봉을 향하는 능선에는 돌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종대로 늘어서 이동하는 개미떼의 행렬처럼 가물가물 눈에 들어온다.
백두산 산행은 이렇게 돌계단을 오르며 시작됐다. 백두산 정상을 향한 비탈진 능선은 나무 한그루 볼 수 없는 파란 초원처럼 단정하다. 아래쪽을 둘러보아도 파란 잔디능선은 골프장의 그린을 연상케 한다. 정상은 지척인 듯 가까워 보이는데 실제 오름은 가파르고 긴 것이 숨을 헐덕이게 한다. 산자락에 펼쳐진 초원처럼 파랗게 보이는 잔디는 자세히 보면 갖가지 이름 모를 식물의 혼성 구룹이다. 이것이 백두산의 또 다른 자랑거리 야생초 초원이 아닌가 싶다. 금잔디처럼 지표에 달라붙은 듯 자잘한 풀 섶에는 철이 지나 말라버린 지지 않은 꽃 잎 새가 아직도 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지금은 검게 그을은 볼품없는 꽃잎으로 남았지만 제철이었다면 생기 넘치는 화려한 모습으로 뭇사람의 시선을 끌었을 것이 틀림없으리라, 온통 펼쳐진 초원에 만발한 야생화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으로도 화려한 야생초 화원의 생생한 그림자를 가늠 해 보기에 충분하다.

한 40여분 숨을 헐덕이며 올라선 백두산 능선마루,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알리는 백두산 경계석이 먼저 우리를 맞는다. 파란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이 여유롭게 떠있고 저 아래로 내려 보이는 잔잔한 천지는 파란 물결에 하늘의 광활한 기상을 포용하듯 흰 구름을 유유히 드리운 채 근엄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가슴이 확 열리고 피가 솟구치는 듯 뭉클한 감정이 앞선다. 우리는 그렇게 바라고 기다려 왔던 백두와 천지의 정상에 드디어 섰다.

사실 백두산 천지를 보는 데는 3대를 보시해야 만이 하늘길이 열리는 행운이 주어진다는 말이 있다 한다. 그만큼 기상의 변덕이 심해 쾌청한 날씨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국의 실권자중 한 사람이었던 조자양이란 분은 이곳을 4번이나 방문하였지만 한 번도 제대로 천지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일화를 소개 한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오른 백두산의 날씨는 쾌청한 가을 날씨와 다를 바 없는 온후하고 맑은 날씨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만리 길을 마다않고 오로지 민족의 영산이라는 숭고한 마음으로 백두산의 정기를 한 몸으로 느끼고 천지의 웅비를 마음 것 체험해 보고자 찾아온 길이 헛되지 않았음에 일행은 마음속 깊이 감사했다. 우리는 천지의 능선에 서서 중국 쪽 천문봉과 반원형의 반대편 북한쪽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고봉들을 시간 가는 것도 잊고 둘러보며 한동안을 머무르다 가이드의 재촉으로 하산을 했다. 우리가 정류장에 도착 버스를 타고 출발하자 기상은 그동안만 우리의 행운을 허락한 듯 금세 어두워지며 소나기성 폭우를 퍼 붓기 시작한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피해가듯 그렇게 피해 가며 나머지 일정을 끝내고 우리의 백두산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마지막 일정인 환인시로 가서 오녀산성을 보는 것으로 이번 여행의 모든 여정이 끝난다. 그러나 통화 환인 단동을 거쳐 대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그 과정도 만만치가 않게 긴 여정이다. 이번 여행길, 무엇보다 중국 변방의 일부지역에 불과한 여행의 노정을 거리로 환산하면 서울과 부산을 두 번을 왕복 하고도 남는 긴 거리였다. 이렇게 먼 거리를 버스로 이동하면서 넓게 펼쳐진 중국 대륙의 광대함을 실감하고, 한편 우리 조상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위대한 영토가 얼마나 광활 했는가를 실체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지켜내지 못하고 손 털듯 다 털어내고 대륙 반도의 한쪽 조그마한 땅덩어리에 나약한 존재로 남게 된 우리가 한없이 옹색하고 한편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한다.

우리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을 의지의 대명사처럼 자주 애용한다. 그리고 “우리는 해 낼 수 있어”라는 말로 집단을 과시하며 무력해지려는 마음을 달래며 위로하려 한다. 천 년 동안이나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유리방황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절치부심, 끝내 조상의 땅을 오늘에 되 살렸듯이 우리도 그런 야망으로 우리의 국력을 비축하며 조상의 위대한 고토를 회복할 수 있는 그 날은 언제일가 하는 부질없는 욕심을 심어본다.

우리는 해 낼 수 있어가 공치사가 아닌 사실로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한다. 여행은 보고 먹고 즐기는 재미로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하면서는 보고 즐기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여행이었다. 함께한 여러분들과 함께 인생의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어 또한 즐거웠다. “이것이 인생이다.” 란 말이 좋은 뜻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