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름이 넘실대는 압록강은 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바다라 함이 더 어울릴 듯 넓고 푸르다. 몇 해 전에 왔을 때는 단동 시에서 강변에 아파트 공사를 벌려 요란스럽더니 이제는 말끔하게 도심의 면모를 일신했다. 이 강변에 서면 가슴 한편이 저려오는 허전한 감정을 떨칠 수가 없다.
바라보이는 북한쪽 풍경이 초라해서가 아니다. 왜 내나라 내 땅을 이국의 저편에서 등을 지고 서서 보아야 하는가 하는 망연의 허전함이 가슴을 누르기 때문이 아닐까? 배를 타고 강줄기를 돌아보면서 저들의 무심해 보이는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풀기 없어 보이는 갸날픈 행동에 연민을 느끼며 언젠가는 서로 손을 맞잡고 힘차게 활짝 웃을 날이 오리라 기대하며 또 그리 되기를 기원했다. 집안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시골길처럼 좁고 한적한 산골길이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산세가 높고 굽은 길이 많을 거라고 하더니 산골의 풍경이 한가롭고,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촌락의 모습도 자주 뜨인다. 집안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 있는 곳이다. 성의 북쪽에 전시에 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했다는 환도산성이 있다. 성은 허물어져 일부 성벽만이 남아 초라한 모습이다. 국내성 외곽 가까운 곳에 고구려 최대의 번성기를 이뤘던 광개토대왕 과 그의 아들 장수왕 능 그리고 장수왕이 아버지의 위대한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는 광개토대왕비가 서로 지척에 있어 둘러보기가 편하다.
산자락의 중간쯤에 장대한 화강암을 계단식으로 쌓아올려 축조해서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한다는 장수왕 능, 무게가 수 톤씩이나 되는 돌을 정교하게 짜 맞춰 쌓아올려 축조한 능을 보면서 옛사람들의 능력과 지혜를 되새기게 한다.

이 능에 올라가면 산의 밑자락 저 멀리 압록강 너머로 북한의 만포시가 눈에 들어온다. 산자락으로 둘려진 도시는 반쪽만 보이는데 그나마 도시 한편은 커다란 공장이 들어서있고 높은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저곳에 동 광산이 있어 동을 제련하는 공장이라고 했다. 만포 시는 북한의 북방경계의 군사 요충지로 군사시설이 많고 또 여군 사관학교가 이 도시에 있다며 북한의 요구로 사진 찍는 것을 금지 시키고 있다며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는다. 오후 늦은 시각 우리는 통화로 이동, 해가 저물은 시각에 호텔에 들어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피크 백두산으로 향하게 되는데 새벽에 출발 할 예정이니 미리 대비해 달라는 당부다. 통화에서 백두산 까지는 약300km라 한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살아서 일가 지도상으로는 별로 멀어 보이지 않는 거리인데 웬만하면 3~4백 키로 라 하니 거리 감각이 둔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날 아침 6시 40분, 백두산을 향해 출발한 버스는 중간에 쉬임도 없이 내쳐 달리기 시작했다. 갈수록 산세가 드세지며 험준한 산골의 높은 고개를 몇 굽이를 거치는 형세가 장백산맥의 지세를 은연중에 느끼게 한다. 산길을 지나다 보면 제법 높은 산자락의 숲속에 파란 비닐을 덮어 만든 초막들이 보이는데 그것이 모두 인삼을 재배하는 삼밭이라고 했다.

여기서 생산되는 인삼이 이 고장의 특산물로 정평이 있는데 모르는 관광객을 상대로 때로는 고가의 산삼으로 둔갑 한다고도 했다. 새벽길을 재촉해 달려온 길, 10시를 조금 넘기자 저 멀리 앞쪽으로 하얀 눈을 뒤집어 쓴 것 같은 고봉이 보이기 시작 한다. 저 하얀 산이 백두산의 영봉이라고 귀 뜸을 한다. 원래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의 하얀 재가 봉우리에 덮여 하얗게 보여서 백두산아리 했다 했으니, 백하의 백두를 사실로 확인 한 셈이다.

점차 가까워지는 백두산을 바라보며 달리는 마음은 마치 고향 길을 향하는 것과 같은 설레임과 푸근함이 얽히는 그런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만의 감상인지 모르겠다. 백두산 밑자락은 넓은 평원처럼 보인다. 대 평원과 같이 드넓게 펼쳐진 분지는 울창하고 짙은 나무숲으로 덮여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푸르게 하고 싱싱한 활력을 불어넣는 매력이 있다. 이도백하를 거쳐 가는 북파의 백두산 길은 미송으로 불리는 소나무와 피나무의 울창한 숲길이더니, 이곳 서파 길은 이곳에서는 백하나무라 불린다는 활엽수의 자작나무 숲길이다. 파란 캠퍼스에 하얀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자작나무 숲속을 곧게 뚫어 만든 쭉 뻗은 길이 또한 시원스럽다. 서파의 백두산 산문은 승무를 출 때 쓰는 고갈 모양이다. 그 상단에 장백산 이라는 문패를 달아 놓았다. 관광객들은 산문을 지나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백두산을 오르게 되어있다.

완만한 오름세 길을 조금 달려 어린 전나무처럼 보이는 녹색이 유난히 짙은 숲길을 벗어나면 풍경은 일변한다. 능선 길옆으로는 마치 세파에 시달려 지친 군상들처럼 뒤틀리고 엉클어진 형태의 이름 모를 나무들이 앙상한 모습으로 군락을 이루며 산자락을 메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