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두 영화 때문에 극장가가 뜨거웠었지요.
<디 워>와 <화려한 휴가>. 특히 <디 워>는 관객과 평론가가 극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가 하면, TV 시사프로그램의 토론 대상이 되고, 한국 영화로는 최대 개봉 극장수로 미국에서 상영된다든가, 충무로 정통 감독이 아닌 코미디언이 7여년 동안 700억의 자본을 들여 만든 인간승리의 결정체라는 둥 숱한 화제로 연일 뉴스의 초점이 되곤 했었지요.
평론가들은 관객들이 애국주의에 휘둘려 영화 평가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고, 관객들은 충무로 떼거리들이 자기들만의 성을 쌓아놓고 코미디언 출신 감독의 작품을 마구 내치고 있다고 반격을 했습니다.

사실 <디 워>는 영화문법으로 보면 허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영화의 기본인 스토리 라인부터 엉성하지요. 한국의 남녀가 왜 미국의 남녀로 환생하는지, 왜 그들이 그런 임무를 갖고 태어나야 하는지, 극을 공감하는데 필요한 그런 설명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선한 이무기는 밑도 끝도 없이 별안간 나타나 찬란한 대미를 장식합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괴기영화면서도 <괴물>에서 보여진 확실한 ‘빨아들임’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무기는 그 큰 입을 벌리고 거대한 몸뚱이를 요동치면서 당장이라도 덮칠 듯 따라 붙지만 ‘오싹’할 정도의 결정타는 끝까지 보이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장점은 있습니다. 일단 영화가 ‘보여주는’ 장르임을 고려할 때 LA고층 건물을 휘감아 올라가는 장면이나 선한 이무기가 용이 되어 꿈틀거리며 하늘로 사라지는 모습은 그 자체가 장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본 보람을 느낍니다. 또다른 장점은 세계시장을 겨

냥했고 그래서 미국을 무대로 세계인 모두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판타지’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런 외적인 것으로 작가의 수준을 다 얘기할 순 없지만, 그러나 중요한 문제를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혼자 고군분투하며 개척해 갔다는 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우리에게서 세계적인 작품이 나오길 소망하니까요.

세계화……, 누구보다도 당사자인 영화감독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겠지요. 시대와 인종과 지역을 뛰어넘어 재미와 감동을 주는 그런 작품……. 일본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나생문>이 베니스 영화제 역사 상 가장 빛나는 작품으로 뽑혔고, 대만의 이안 감독이나 중국의 장이모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세계적 작가로 활약을 벌이고 있는 지금,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 영화사에 영향을 끼칠 만한 작품, 감독이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우리 감독들이 세계적 보편적 정서가 아닌 우리 만의 정서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한때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유행했고 어떤 면에서 이는 아직도 유효한 발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영화는 오로지 우리의 대표적인 정서가 ‘정’이라 하여 우리 것을 세계화 시킨다는 사명감(?) 아래 이것을 표현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물론 이 정서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이건 좋으나 나쁘냐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문제는 ‘정’을 ‘정’의 표현방식으로 풀어서는 세계적 작품이 되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정’다운 표현 방식 대신 ‘의연함’이나 ‘합리적’ 또는 ‘이성적, 지성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