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하나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보면 30이 넘은 실업자 노총각 아들이 예비군 훈련에 나가게 되자 안쓰럽기만 한 노모가 토닥이며 얼마의 돈을 손에 쥐어 줍니다. 그저 눈 앞에서 안됐다고 다독이고 어루만져주는 것이 우리 영화에서 정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정을 정으로 표현하는 거지요. 반면 아일랜드 영화 <원스 once>에서는 거리가수인 주인공이아버지 집에서 사는데 그는 그 대가로 아버지가 경영하는 작은 전기제품 수리가게에서 일을 합니다.

할 일을 다해야 거리로 나가 자기가 원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 부모 자식간에 너무 냉정한 것 아니냐 싶지만 그 다음 장면을 보면 그렇질 않습니다. 아들이 아일랜드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 더 큰 시장인 영국으로 떠나려 하자 아버지는 통장을 내놓습니다. “네 몫으로 준비해 둔거다.”하면서. 서양의 아버지라고 자식에 대한 정이 어찌 우리 부모만 못하겠습니까?
해리포터 열풍에서 알 수 있듯, 아이들이 원한다고 새벽부터 나가 그 책을 사오는 그들의 열성을 생각할 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어디라고 더 하고 덜 한게 없습니다.

다만 그 표현 방식에 따라 달리 보이는 거지요. 조금은 거리감을 두는 것, 좀더 절제하는 방식이 대체적으로 서구적 방식입니다. 저는 여기서 어떤 표현 방식이 더 좋은가, 나쁜가 그런 편가름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얘기하지만 우리가 세계적인 작품을 원한다면 세계적 감각에 눈을 떠야 하고, 그 세계적인 것이 지금 서구 세계, 특히 미국의 정서를 의미한다면 (미국에서흥행대박을 터뜨리거나,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타면 실력에 대해 확실하게 인준을 받는 거니까)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몇 년 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러가기 전 영화제에서 무슨 상을 주려 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동행인에게 “이 영화는 감독상 감이지, 작품상 감은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날 저녁 뉴스를 보니 그대로였습니다. 왜냐구요? 거기서는 성폭력이 사랑으로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것도 자구능력이 없는 장애인을 상대로 한 행위를 말입니다. 결과가 사랑이면 과정은 어떠해도 상관없다는 건, 합리적이거나 지성적인 발상이 아닙니다. 개인의 희망사항일 뿐이죠.

그런 면에서 <화려한 휴가> 역시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아직도 너무나 큰 아픔을 지니고 있는 분들이 많은 현실에서 영화를 평가한다는 게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실제로 <디 워>에는 융단 폭격을 퍼부은 많은 평론가들이 <화려한 휴가>에는 다들 휴가 갔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저도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겠습니다. 영화로서만, 그것도 세계적인 영화를 위한 충정으로 임한다는 나름대로의 방비벽을 세우고 말입니다.

우선 스토리 라인이나 구성에서는 짜임새가 잡힌 작품입니다. 의미도 있고 어려운 소재를 소화해낸 작가의 노고도 보입니다. 문제는 인물구성이나 그들을 통한 표현 방식이 지극히 종래의 기법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그런 인물과 사건이 있었다해도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로 재구성 되었을 때는 좀더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지요. 이 영화가 아픔을 당한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자 하는 것이기만 했다면 모르지만, 이미 많이 접한 소재를 새로운 영화로 만들 때는 영화를 통해 한 차원 높아진 정신적 고양까지 기대했어야했고 다른 표현 방식을 취했어야 했다는 겁니다.

6개월 전에 본 <행복을 찾아서>는 아직도 많은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주인공이 그 속타는 심정을 의연함으로 참아내고 다 토로해내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대신 그의 내면에 있는 감정을 전해 받아 자기 가슴에 간직하기 때문이지요. 한 차원 업 그레이드된 듯한 정신적 고양을 함께 경험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분노와 눈물을 직설적으로 다 터뜨리는 바람에 보는 그 때는 같이 눈물 흘리며 공감할 수 있어도, 영화관을 나오고 나면 공감했던 만큼 강한 인상으로 남질 않습니다. 감정을 그 자리에서 발산해 버림으로써 고여 있을 여지가 없어진 때문이지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것을 비하하기 위해 서구화를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방식을 고수하는 것, 그것 자체가 우리 것을 사랑하는 고집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동양권 출신 세계적 작가에 따라 붙는 수식어가 대체적으로 자기 전통적인 소재와 표현 기술에 서구 정신의 감각을 조화롭게 적용시켰다라는 평가임을 상기할 때 우리도 그런 문제를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지요.

영화인들의 건투를 빕니다.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 믿고 또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