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단의 연주에 어우러져 독창으로 이어간 대목은 이국땅에서 통일을 염원했던 고인의 절규를 들려주는 듯했고 그렇게 굳센 합창과 처절한 독창이 서로 헤어지고 다시 부둥켜안기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가 완성되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외치며 끝을 맺었다. "오 영광.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통일이여, 통일이여!"

공연은 끝났지만 청중들은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박수는 그칠 줄 몰랐다.
지휘자 곽승은 마침내 악보를 집어 들더니 하늘 높이 쳐들어 버렸고 그 순간 함성과 박수가 다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지휘자는 그 악보를 가슴에 힘껏 품어 안으며 눈시울을 붉혀 버리고 말았다.
1천 300여명의 청중들은 그러한 지휘자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전하는 것이지 잘 알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던 이수자 여사가 다시 무대 앞으로 나갔고 지휘자와 가벼운 포옹을 하며 등을 토닥거렸다.

윤이상 선생은 이 칸타타가 한국에서 초연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불행히도 살아생전 그 소망이 이루어지 못하였다가 작곡된 지 20년이 지난 오늘 부인의 고향인 부산에서 초연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수자여사에게 밀려오는 감회는 설움과 한이 아니었겠는가?

이 칸타타는 듣기 편한 곡은 결코 아니다.
모차르트처럼 ‘달콤한 맛’도 없고, 비제와 같이 ‘정열적인 사랑’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오히려 불협화음 같은 어려운 선율이 난해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칸타타는 ‘편안함’이나 ‘달콤한 사랑’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민족의 분단에 대한 안타까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핀란드’에는 ‘시벨리우스’라는 유명한 음악가가 있다.
그는 조국에 대한 진지한 사랑이 찬란하게 빛나는 ‘핀란디아’라는 곡을 작곡하여 당시 어려운 환경 속에 시름하고 있던 국민들에게 큰 힘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핀란디아’는 오늘날 핀란드의 준 애국가처럼 애창되고 있다.

핀란드 국가에서는 시벨리우스를 국가의 영웅으로 대우하면서 그의 음악활동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시벨리우스 집 위로 비행기가 날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전해들은 이야기 이므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예술가가 처한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다음은 윤이상 선생이 1987년 10월 평양에서 이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를 초연 후 남긴 글의 일부이다.

『나는 이 교성곡(칸타타)을 1987년 2월과 3월 2개월 동안에 완성하였다. 언젠가 한번은 민족을 위한,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안겨질 곡을 쓰고 싶었다. 이 곡은 나의 양심에서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온 곡이다. 이것으로 <광주여 영원히!>와 함께 나는 작곡가로서 우리 민족에게 바치는 나의 절절한 호소와 충정을 표시한 것이다.』

1967년 동베를린사건(일명 동백림사건)으로 우리나라를 떠난 후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을 끝내 밟아보지 못하고 서거하신 윤이상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경남 통영에서는 ‘통영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내년에는 꼭 통영을 다녀오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