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 날이 왔다!
퇴근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서둘러 책상을 정리했다.
오후 7시까지 문화회관 앞 쌈밥 집에 모이기로 했으니 교통이 막힐 것을 고려하여 퇴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망가야 했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데 과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때다! 하고 냅다 튀어나가 전철역으로 달렸다. 저녁식사를 30분 내에 마쳐야 했기에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대극장으로 들어섰다.
오늘 따라 이상하게도 무대가 낯설게 느껴졌다.
3개의 합창단(부산시립합창단, 한울림합창단, 김해시립합창단)을 위하여 무대 뒷부분을 할애하다 보니 교향악단의 위치도 앞으로 많이 밀려나오고 솔리스트와 지휘자의 자리가 협소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대전체가 꽉 들어차 있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윤이상 선생의 생애를 전하는 영상물을 8분가량 관람한 후 사회자가 오늘의 공연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었다. 이번 공연은 윤이상 선생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하는 ‘2007 윤이상 페스티벌’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분 행사라고 했다.

선생의 탄생일(9월 17일)부터 서거일(11월 3일)까지 서울, 평양, 베를린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장르의 윤이상 음악작품이 소개되는 축제행사였으며 이 가운데 부산공연은 유일한 지방공연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연주되는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이라는 곡은 북한에서 연주된 적은 있으나 국내 무대에서는 처음 연주된다고 하니 더욱더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작품소개를 마친 사회자가 “오늘 이 자리에는 너무나 귀하신 한 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우리 고장 부산출신이며 작고하신 윤이상 선생님의 부인이신 이수자 여사님께서 40년 만에 고국을 찾아 오늘 이 자리를 같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사회자의 뜻밖의 말을 듣는 순간 객석이 잠시 웅성거리거리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4백만 부산시민을 대표하여 부산시장이 이수자 여사에게 ‘명예시민증서’를 수여하였으며 청중들은 모두들 일어서서 ‘환영의 기립박수’를 끝없이 보냈었다.
이수자 여사!
남편 윤이상 선생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다가 40년 만에 고국을 찾게 되었으며 지난 9월 13일 청와대를 방문하여 노무현 대통령에게 “역대 정권 그 어느 누구도 명예회복을 해주지 못했는데 노 대통령이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신데 대해 큰 절을 올리겠다.”고 말하면서 그 자리에서 `큰 절'을 올려 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든 사람이다.
“남편이 꿈에도 그리던 고향 통영 앞바다에 가서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면서도 남편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모국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던 올해 80세 이수자 여사!
부산시민의 환영에 대한 보답으로 청중에게 머리를 숙이는 여사의 흰 머리카락은 조명아래 눈부시게 아름답게 보였으며 80세 노인의 쇠약한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공연이 시작되었다.
지휘자는 곽승이라는 음악가로 현역 지휘자중 유능함을 인정받는 지휘자이다.
곽승 지휘자의 공연을 약10회 정도 보았는데 청중을 향해 유머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절대 없고 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진지하게 지휘하는 음악가로 잘 알려져 있다.
장엄한 북소리와 함께 4명의 솔리스트, 교향악단, 합창단 등 240여 명이 이루어 내는 대 서사시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이 칸타타는 시인 고은을 비롯한 9명의 민족시 11편을 4개의 주테마로 구성하여 만든 작품으로 45분간 한민족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를 노래하고 있었다.
4명의 솔리스트(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바리톤)는 무대 중앙에서 자기 순서를 찾아가며 열창을 이어갔고, 고막을 찢을 듯한 합창단의 함성이 악단의 연주를 삼켜버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