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에는‘최초의 펭귄(First penguin)’이라는 관용어가 있다. 펭귄들이 떼를 지어 우르르 바다로 모여 들지만 정작 바다에 뛰어들기 직전에 일제히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머뭇거리는데 바다 속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먹잇감도 있는 동시에 위험한 물개나 바다표범 같은 천적들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뭇거리고 있는 펭귄의 무리 가운데 그 불확실한 바다를 향해 맨 먼저 뛰어드는 용감한 펭귄이 바다에 뛰어들면 그때까지 머뭇거리고 있던 펭귄들도 일제히 그 뒤를 따라 바다로 뛰어 든다. 즉 최초의 펭귄이란 불확실한 바다로 뛰어드는 용기있는 펭귄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 역시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용기 있는 펭귄처럼 새로운 것들에 대한 도전과 모험을 즐겼던것 같다.

처음 소위로 임관되어 최전방인 25사단에 근무할 때 일이다. 당시 철책선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돌을 3~4개씩 쌓아 놓고 무너진 곳이 있는지 없는지 후레쉬를 비추며 순찰을 돌았는데 비가 내리는 날은 쌓아놓은 돌의 모습을 구분하기 쉽지 않아 이상 유무를 식별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그래서‘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하고 고민하던 중 고향마을 이어주던 다리 양옆에 난간이 없어서 다리를 건너다 떨어져 부상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때 어느 어른께서 다리 양쪽부분에 돌기둥을 세우고 회를 칠해 캄캄한 밤에도 회칠한 기둥이 멀리서도 환하게 잘 보여 안전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하였던 기억이 떠오르게 되었다.
다음날 당장 백회를 가져다 소대원들과 함께 돌의 남쪽방향에만 하얗게 회를 칠했다. 저녁에 순찰을 돌며 후레쉬를 비추지 않고도 한눈에 이상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자 소대원들의 탄성이 이어졌고 우리는 그때부터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빈틈없이 빠른 시간 안에 순찰을 돌 수 있게 되었다. 며칠 후 사단장 방문이 있었다. 철책선을 순시하시던 사단장은 백회가 칠해진 밝은 색의 돌을 보시고는‘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물으시면서 정신이 있는 사람들 맞느냐며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화를 내셨다. 나는 비오는 날을 포함하여 어두운 날 주변 사물을 구분하지 못해 철책선을 근무하는 병사들의 애로사항과 더불어 돌의 남쪽 방향으로만 회를 칠해놓으면 적들은 알지도 못할뿐더러 회칠로 인해 적의 침투나 철책선 이상여부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명을 드렸다. 설명을 들으신 사단장은 다음날 바로 사단에서 관리하는 모든 철책에 놓인 돌에 백회를 칠하게 하시었고 이는 전군으로 확산되어 155마일의 철책선을 보다 효율적으로 경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철통같은 경비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었던 것은 내게 주어진 조국의 안위 앞에서 기존의 안일함을 버리고 정확한 판단력으로 용기를 내서 실행에 옮겼기 때문인 것이다. 만일 상관을 의식하여 실행에 옮길 것을 두려워했다면 결단코 지금의 내가 없었을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