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상 처음으로 꿈의 숫자라 불리는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영화, <실미도>.
도대체 영화의 어떤 힘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을까. 어떤 이는 국가나 정치상황에 대한 집단적 피해의식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껴서일 거라고 전하고, 어떤 이는 액션과 드라마적인 소재 덕분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본 한국 영화와는 다른 크나큰 감동과 흥분을 느꼈던 나는, 그 외에도 더 폭발적인 어떤 힘, 영화전편에 걸쳐 강렬하게 흐르는 역동적인 속도감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 모가지를 따러왔다'는 북한 무장공비의 말에 충격받아 급조된 684 북파부대. 그러나 분명 군인임에도 군번도 계급도 없이 사형수나 무기수 같은 밑바닥 인생들로 꾸려진 까닭은 애초부터 ‘아무도 모르게 써먹고 아무도 모르게 없애버릴 계획'이었으리라는 짐작을 충분케 해준다. 그런데도 미끼는 더없이 달콤하다.
“나라를 위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지 않겠는가?”
빨갱이 자식이란 연좌제에 걸려 조폭 행동대장으로 사형을 언도 받은 인찬(설경구), 오도가도 할 수 없는 그에게 이 말은 제안이 아니라 차라리 명령이다. 사실 6ㆍ25 전쟁으로 국토와 삶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재건의 몸부림을 치던 그 시대에 ‘반공주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반공'이란 연막탄 안에서 인권유린의 진수성찬을 차려 몇몇 권력자들이 배를 불렸다는 것이 용서받기 힘든 일일뿐.

이렇게 비슷한 사연의 하류인생 훈련병 31명이 기대를 안고 실미도에 발을 올린다. 하지만 실미도 오는 배 안에서 평소 버릇대로 기간병까지 우습게 알고 비죽거리던 이들도 죽어보지도 않고 지옥에 가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리라. 단 4개월 안에 만들어져야 하는 인간병기들, 군홧발에 짓뭉개지며 인간 이하의 참혹한 훈련을 받는 그들의 모습은 갱생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에 더욱더 동정심을 자극한다. 불에 달군 인두로 살을 지지는 잔혹한 장면에서는 허억, 가슴이 내려앉는다.

흘리는 땀과 핏방울을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여기고 지옥훈련을 감내해 내는 이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북한침투명령'이 아니라 국제정세 변화와 남북화해무드에 따라 그들의 존재가치를 폐기 처분하라는 명령, 이제 그들은 아무도 거두어들이고 싶지 않은 귀찮고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분노한 훈련병들은 대장과 기간병을 죽이고 버스를 탈취, 청와대로 떠난다. 하지만 대방동에서 기다리고 있던 군경합동부대, 인질의 목숨까지 파리목숨처럼  

우습게 아는 무식한 권력 앞에서 그들이 느낀 것은 절대적 절망이었을까. 마치 마지막 저항이듯 그들은 버스 안에서 자폭, 삶을 마감한다.
이렇게 이 영화는 드라마적인 소재 하나만으로도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 목숨을 담보로 걸고 ‘김일성 모가지 따러 가는

일' 자체가 메가톤급 이야기 거리 아닌가. 사람 죽이러 가는 길이니 강한 에너지를 지닌 액션 장면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이념의 문제가 개입되는 만큼 갈등의 폭이 클 수밖에 없으며, 인권의 문제가 걸렸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장치들은 영화가 굵은 선을 지키면서 힘찬 달음박질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