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는 다르게 한 행위가 때론 상대에게는 진심어림으로 보여 나의 말과 행동에 “감동먹었다고” 말해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아마 99년 여름쯤으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민원실에서 국외여행, 민원, 병적증명 등의 업무를 맡고있었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잠깐의 여유조차 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가는 바쁜 시간이었다. 또 내 뱃속에서 커가는 아이가 나를 좀 지치고 힘들게 하는 지루한 여름날이었다.

내가 그 할아버지를 만난건 지루한 장마의 끝이던가?
낡은 우산을 들고 구부정한 자세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분이 병적증명서 발급을 요청하셨다. 몇 해 전에도 들르셨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의 군 기록은 6?25전쟁이 끝난 후부터 군복무를 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 기록으로는 6?25참전용사 혜택을 볼 수 없었고 아마 혹시나 하는 기대로 다시 병무청을 방문하신 듯했다. 이 할아버지는 군번 없이 6?25전쟁에 참전하셨고 종전 이후에 군번을 부여 받으신 후 몇 년을 군에 더 장기 복무하신 분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입증할 만한 기록은 병무청뿐만 아니라 육군본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통보받으시고도 두어번 더 민원실을 방문하셔서 평생 한이라며 어떻게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오셨다. 나는 담당자로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전부 해본 상태라 더 이상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설명하고 할아버지를 가시게 한 후 잠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구부정한 허리에 생활고에 지친 듯 정문을 나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나는 옆의 공익근무요원을 다급히 불러 얼른 할아버지를 다시 모셔오라고 했다. 내마음 속에서 뭔가모를, 그분에 대한 안스러운 마음이 동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다시 모셔 오게하고 국방부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이런 경우 구제방법이 없느냐고 물으니, 진정서와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다시 민원실을 방문한 할아버지께 6?25전쟁 즈음에 찍은 사진을 가져오게 하고 그 사진을 보충자료로 국방부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할아버지는 나를 참 귀찮게 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자신의 구세주라도 되는 양 생각하시는 듯했고 내가 국방부에 연이 닿아있다고 생각하시는 지 퇴근이후 집까지 전화를 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마다 내가 “괜한 짓”을 했노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 할아버지께서 평생 한이라던 6?25참전 용사증을 들고 다시 나를 찾아오셨다. 그런데 축하의 말을 전하기가 무섭게 할아버지는 나에게 참전당시 다치셨다며 보훈대상자 신청을 할 예정이니 다시 또 진정서를 써 달라는게 아닌가? 6?25 참전용사증이 평생 한이라더니 이번엔 보훈대상 자라고... 휴 쓴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반 년 정도 시간이 지난 어느 토요일 누가 나를 찾아왔다고 해서 민원실로 내려가 보니 일전에 그 할아버지였다. 나에게 보훈처로부터 매달 60만원씩의 연금을 지급받게 되었다며 ‘꼭 인사를 해야겠기'에 라며 주름진 얼굴로 밝게 웃으셨다.

그후에도 두어번 과일을 사들고 나를 찾아오셨다. ‘최근 내 몸이 아픈게 고마운 사람을 자주 찾아보지 않은 듯'해서 그런 것 같아 이렇게 또 찾아왔다는 말씀을 하시며...
그때 난 속으로 많이 부끄러웠다. 처음에는  동정으로 그분을 도왔고 나중에는 짜증섞인 말도 많이 건넸는데 이분은 나를 정말 은인으로만 생각하고 계시다니. 그리고 내가 한 아주 작은 배려가 이분에게 이렇게 엄청난 혜택을 돌려드리는 기회가 되었다니...

할아버지의 감사인사에 난 그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부끄러웠다. 또한 아무도 모르지만 나의 마음만은 진실을 알고 있기에 이 일을 통해 난 참 많은 교훈을 얻었다. 고객만족이란 내 마음이 부끄럽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 1%만을 더하면 되는구나. 이런 작은 배려가 타인에게 놀라운 혜택을 드릴 수 있다니. 내가 공무원으로서 처음 느껴보는 보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