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풀코스 도전을 앞둔 심정은 소풍날을 받아 둔 어린아이의 마음 그것이었다. 올 봄부터 달리기를 시작하여 하프는 두어 번 뛰어봤지만 풀코스는 처음이라 무척 설레었던 요 며칠이었다. 설레임과 흥분 속에 마라톤 풀 코스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다.
그러나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까! 결전의 날은 다가오는데.. 걱정스럽다. 고통, 특히 35킬로를 지나면서 겪는다는 하트브레이크를 견딜 수 있을까. 왼쪽 무릎의 통증은 과연 어디서부터 찾아올 것인가, 그대로 주저앉지는 않을까,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기분은 어떨까!.. 설레임과 걱정이 뇌리를 치곤했다.

나의 역사적인 마라톤 완주에의 처녀무대가 그 이름도 유명한 국제공인 “춘천마라톤”이 될 게 뭐람. 그래도 예감은 좋았다. 황영조가 제공하는 4주간 훈련법을 착실히 따랐다. 30킬로의 거리주 훈련도 두 번 시행했다. 인터벌 훈련, 컨트리크로스, 변화주라는 것도 처음 시도해봤다. 마라토너들을 위해 특수 제작한 기십만원짜리 신발도 사고, 겨드랑이의 쏠림을 막는 특수바셀린도 구했다. 직원들이 완주 기원으로 선물한 기능성 양말은 더욱 반가웠다.
디어 결전의 날. 아내가 준비한 찰김밥을 먹고 춘천행에 올랐다. 날씨도 좋았다. 전날 저녁 내리던 비도 그치고 드문드문 잿빛구름만이 해맑은 가을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올해부터 풀코스만 달린다는 이번 춘천마라톤에는 무려 일만 육천 여명이 춘천운동장에 모여 건각을 뽐내고 있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마니아들은 다 모인 것 같다. 개인 기록 순으로 출발한다니까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은 대열의 꽁무니쪽이 출발선이다. 하니 전광판만 보고 출발 신호를 알게 될 정도다. 자연히 20분이나 늦게 스타트라인을 밟았다.
처음부터 오르막이다.
한때 마라토너였다는 우리청 징병관은 충고했다. ‘처음에는 욕심내지 말고 무조건 천천히 뛰십시오. “첫 2분 아끼려다 나중에는 20분이 늦습니다” 실제 뛸 수도 없었다. 사람에 실려 앞으로 나갈 뿐이다. 고개를 지나 의암호가 보이는 내리막을 달리자 시원하게 펼쳐지는 경치가 진짜 소풍을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건너편으로는 벌써 선두그룹이 개미들 행군하듯이 까마득히 달리고 있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왔다는 한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던지는 말이다. 삼악산 아래 의암호를 끼고 달리는 마라토너들의 모습이 무슨 꽃처럼 보인다는 의미일까. ‘아, 샛노란 국화꽃이 만발했군요.’
오늘 따라 내가 웃음이 헤퍼지고 말도 많아졌다. 연도에서 박수치는 아이에게 활짝 웃어보이고 손도 흔들어준다. 달리는 외국인에게 하이팅을 외쳐보기도 한다. 카메라만 보면 손을 흔들어대는 젊은이에게도 한마디 한다. “저게 다 나중에 돈 드는 일이야” 하니, ‘보기만 하고 안 찾으면 돼요”하며 웃으며 사라진다.

처음부터 너무 힘을 빼는 건 아닐까! 제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면 안 되는데.......자꾸만 속도가 붙어 걱정스럽다. 이곳 춘천이 군대 생활을 했던 곳이라 낯설지 않아서인가 보다.
의암댐을 지나 붕어섬을 향한다. 바람이 상쾌하다. 호숫가를 지날 때는 바람의 찬 기운이 느껴진다. 찬바람 때문인지 머리가 붕붕 뜨는 것 같다. 이것이 혹시 머리가 돌아버리는 조짐이 아닐까. 저쯤에 보이는 카메라가 붕어어미처럼 보인다. 손을 쳐들었다. 바로 이 장면이 MBC-TV로 생중계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