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軍에 있으면서 배운 것은 ‘너는 누구인가’ 이다. 1979년 5월 입대해서 1981년 8월 제대하기까지, 나는 전남 光州 보병학교에서 교육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4.2인치 박격포 조교를 할 때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고참들은 “군인들은 늠름해야 한다”며 “쫄따구”들에게 귀를 막지 못하게 엄포를 놓고 자신들의 귀엔 담배꽁초를 틀어막았다.
군대는 八道(팔도) 사람들이 다 모인 곳이다. 그곳 사람들의 사투리가 나의 발성에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호남 사람들의 사투리는 라틴어, 이태리어의 언어 구조와 비슷해서 멜로디가 있다. 그래서 호남이 唱(창)의 본고장이긴 하지만, 하여간 교과서에는 없는 경험을 군에서 했다.
내가 군에서 배운 것은 이것 말고도 많다. 비록 ‘독수리타법’이긴 하지만 打字(타자) 치기, 문서기획하는 일 등이다. 내가 군대를 안 갔다고 생각해 보라. 문서 기획은 성악가들이 평생 접할 수 없는 일이다. 난 이때 배운 기획력을 바탕으로 음악회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나는 군에서 보병학교史를 편찬했다. 1979~1981년간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보병학교 역사를 3개월간 고생해서 만들었다. 타자로 친 것이었는데, 얼마 전 ‘TV내무반’ 촬영을 하기 위해 광주에 갔더니 사진과 나의 필체가 그대로 있었다. 보병학교史를 만들면서 隨筆(수필) 쓰는 법을 배웠다.
군에서 배운 위계질서는 나와 같은 성악가들에게는 좋은 인생공부였다. 성악가 세계의 위계질서는 일반인들의 그것보다는 약하다.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면 조금 났겠지만, 기껏해야 선배나 알 정도다. 나는 부대 특성상 장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 윗사람과 대화하는 법, 아랫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를 터득했다.
내가 15년 동안 1,300여 회의 음악회를 갖는 동안 선배들과 후배들이 내 주변에 많은 것은 내가 군대 생활을 통해 윗사람을 깍듯이 대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군에서는 편식습관도 고친다. 동계 야영 훈련을 하면서 이틀간 진흙구덩이에서 자 보라. 결벽증이 있는 친구들도 체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입대 전 고등어만 먹으면 두드러기가 생겨 스스로 알레르기 체질로 알았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군대에서는 고등어를 먹고 나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알고 보니 나는 알레르기 체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군에서 나는 신앙을 체험했다. 내가 신병 시절 4.2인치 박격포 조교를 할 때, 성악가에게는 목소리 다음으로 중요한 귀가 나빠져 내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백일기도를 했다.
백일 이상 기도했을 때 들어 주시는 神(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직을 옮긴 후 정보 작전 교육 정훈 비밀서기병 등 여러 가지 보직을 맡았다.
내가 웅변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군에서 비로소 알았다. 보병학교 웅변대회에 고참이 자꾸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나가서 세 차례나 우승했다. 나는 군 생활 동안 보초를 서면서 한 번도 졸아본 적이 없다. 내가 무너지면 부대가 뚫리고 부대가 뚫리면 나라가 망한다는 순진한(?)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도 내 방의 전원이나 컴퓨터, 전선줄, 사무실 문을 제대로 잠갔는지 등을 매일 두세 번 체크하는 버릇이 있다. 비밀문서를 취급했기 때문에 몸에 밴 버릇이다.

나는 고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원래는 陸士(육사)에 진학해 별을 달아보고 싶었다. 그 정도로 나는 군에 대해 애착이 있다. 지금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군대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학생들도 내 방에 들어오면 사관학교 학생처럼 부동자세로 이야기를 나눈다.
어쨌든 군에서 배운 여러 가지 유무형의 자산들이 내가 성악가로서 한국 가곡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에 알게 모르게 작용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