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팀에서 근무하던 작년 여름은 뽀얗게 쌓인 먼지와 텁텁한 공기로 가득 찬 병적고에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한 건을 애쓰게 처리한 보람도 없이 서너 건이 또 쌓이는 병적증명서를 보고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병적기록을 찾아 병적증명서를 발행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이 앞섰지만, 나를 이은 후임이 이 업무를 익히기까지의 겪어야 할 수많은 장애와 시행착오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걱정스런 마음이 나를 더 무겁게 했다.
공직자용 병적증명서 발급대상은 대부분 1950년대부터 1970년에 병역의무를 이행했던 사람들이었고, 한 사람의 병적을 찾고 그 용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병역법과 제도, 부책의 종류, 행정용어 등 풍부한 배경지식과 종합적인 지식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1949년 병역법이 제정된 이래 병무행정의 기구, 병역법령과 제도는 변화를 거듭해 왔기에 당시의 세세한 병무행정 실태를 이해하기에는 분자적이고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긴 시간에 걸쳐 쌓은 선배의 연륜과 경험을 대신할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엮은 종합지침서의 필요성을 늘 생각해 왔다.
그런 필요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일관된 체계와 논리로 꿰는 작업을 감히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 했다. 생각을 억누를수록 누군가는 해야 하고 병무행정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루어야 할 작업이라는 생각은 강하게 나를 압박했다.
그 중압감을 떨쳐 버리지 못할 무렵, 김노운 광주·전남지방청장님께서 2005년 혁신역점추진사업으로 병무행정의 발자취를 한 대 엮은 병무행정사를 편찬하자는 제안을 하셨고, 2005년 8월 청장님의 적극적인 후원과 격려로 작업에 착수하였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땐 평소 많았던 생각은 온데간데 없고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였다. 다행히도 순수한 열정과 헌신으로 적극 동참해준 동료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자료를 수집하고 내용의 윤곽이 잡혀갔다. 어느새 무겁던 중압감은 ‘뜨거운 사명감’으로 변해 있었다. 이것이 추진동력이 되어 편찬 작업은 탄력을 받았고, 혼자만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고된 시간보다는 건강한 동료들과 함께 한 보람된 시간이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성취의 보람으로 벅찬 행복을 맛보았던 그 순간은 값진 추억으로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뜻밖에 수확은 더 넓은 시각에서 여러 각도로 병무행정의 조망을 가지게 된 점이다. 병무행정의 큰 줄기를 아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 어떤 제도가 제정되고 개편되는 환경과 취지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큰 간극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쟁 직후, 유신·군사정권 등 격변기의 정치·사회상이 병역제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법과 제도는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을 반영하여 변화해 간다는 보편적인 상식을 실감하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기록한 단어 하나가 중요한 역사적 보존 자료나 단서가 될 수도 있기에 일상 적으로 행하는 일에 더욱 신중히 임해야겠다는 인식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