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타성에 젖어 있는 나의 정신을 확~깨우는 일이 일어났다. 오후 나른함에 하품도 살짝 하고, 몸도 뒤틀어 보고, 민원인도 뜸한 시간이었다. 소집통지서를 든 부부가 내 앞에 앉으셨다. 아이가 아프다고 했다. 음~ 그럼 재검안내해 드리면 되겠다고 단순하게, 아주 가뿐하게 생각하고 병적을 조회해 보았다. ‘어라~ 전공상사유로 6개월만 근무하면 되는데, 왜 그러시지?’ ‘한달만 훈련받고, 5개월은 편하게 공익하면 되는데... 쯧쯧쯧 요즘은 자식들 일에 부모님들이 너무 호들갑이셔~’ 몇분 지나지 않아 나의 생각이 아주, 아주 많이 꼬였다는걸 알게 되었다. 둘째아들이 군대에서 죽었다. 그래서 막내아들이 6개월 전공상 공익처분을 받은거다. 막내도 몸이 아프다. 키 165cm, 몸무게 45kg, 무릎수술, 근시, 코수술, 폐절제술을 받아질병사유로 4급 공익처분을 받은 후였다.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솔직한 심정은 이러했다. ‘한군데 팍~ 아프면 면제될텐데, 적당히 아프면 이도 저도 안되고 고생만 하는거지’
병무청에서 가장 고질적이고, 시끄러운 민원이 군대에서 자식이 죽어, 남편이 죽어, 가족이 죽었다며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던가. ‘돈 있는 놈들은 자식들 군에도 안 보내는데, 빽없고 돈없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군대가라 하고....’ 병무청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비리만 저지르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어휴~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민원인이 엮이셨나! 병무청에서 근무한지 8년이 다 되어가는데, 드디오 한건 걸렸네’ 답답했다. 어찌됐던 해결해야만 했다.
심호흡 한번 하고, 마음속으로 파이팅. 아자~! 우선 대상자의 병적사항을 면밀히 검토 후 내 나름대로 알려드릴 최선의 방법을 찾은 후 설명을 드리고자 했다.
부부는 내가 하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계셨다. 어느정도까지 아프면 면제가 되는지 설명 드릴려고 관련 부령책자를 펼치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사람아~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또 규정 따지네~ 어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숨을 쉬시면서 사무실을 한바퀴 도셨다.
모든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했지?’감을 잡을수가 없었다.
이대로 호통만 듣고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아버님, 좋습니다. 우선 저부터 말 다 하고, 싫으시더라도 제 말을 다 들으시고, 저 또한 아버님 말씀을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우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에 아버님은 조금 누그러지셨다. 내가 진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걸 조금은 알아주신 것 같았다. 일단 정확한 내용부터 인지한 후 최선을 방법을 서로 찾아보아야 하지 않겠는냐고 다시 한번 더 말씀드렸다.
각각의 질병에 대해 어떤 상태였기에 이런 급수를 받았고, 면제처분을 받으려면 어느정도까지 아파야 하는지, 재검신청을 하려면 어떠한 서류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다보니 1시간 정도가 흘렀다. 마음으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혹시라도 마음 상하실까봐 배려하려고 노력, 아니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중앙신체검사소 이심판정제도』가 아버님의 심기를 또 거슬리게 만들었다.
“비리는 다 저지르면서 허울좋게, 전시용으로 이심한다카고 있네! 무신 저따위 짓을 하고 있는거야~!” 맞장구를 칠 상황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병무청에서 비리를 근절코자 만든 참신한 제도라고 힘주어 답변했다. 내가 흐지부지 말을 흐리면 병무청을 얼마나, 어디까지 한심하다고 보시겠는가? 또한 내가 하는 말도 신빙성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오늘 어설프게 상담하는 사람이었으면 내가 가만 안 놔 두었을텐데... ” 내 마음속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이젠 내가 아버님의 말을 들을 차례였다.
둘째아들(군에서 사망)이 군대를 갔다. 심장이 나빠 입영신검에서도 몇 번이나 귀가가 되고, 재검도 수차례 받으셨단다. 병원에서 비싼 MRI를 수십장 찍어 군부대로 가면 군의관들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대강 판정하였단다. 전문의이기 때문에 대강봐도 다 아셔서 그런 느낌을 받으신 것 같다고 답변했으나, 어설픈 변명처럼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