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논길을 달려 싱그러운 아침 바람과 함께 갖가지 봄꽃을 보며 오노라면 짧게 느껴졌고, 근무지에 도착하여 오늘의 할 일을 떠올리다 보면 조용했던 교정은 아이들 소리로 가득 찬다. 어김없이 9시면 도착하는 통학버스. 거기에서 하나 둘 내리는 아이들과 등교지도를 하기 위해 나온 선생님들. 교실을 혼자서 찾아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아직 담임선생님을 찾지 못해 내렸던 장소에서 꼼짝 않고 서 있는 학생들. 이를 큰 목소리로 불러 반 아이를 오게 하는 선생님과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교실로 이동하는 학생들의 모습.
이제는 나에게 일상이 되어버린 겉으로 보기엔 어수선하지만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고 정돈이 되어 있는 이 학교의 풍경이 2년 전만 해도 나에겐 너무나 낯설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공을 차고 자치기를 했던 바로 그 운동장에 어린 날의 우리와는 뭔가 다른 아이들이 있고, 오래되어 삐걱거렸던 나무 복도와 스르르 소리를 내며 열렸던 미닫이 출입문이 문턱은 없어졌고 경사로와 학교 곳곳에 안내블록이 있는 나의 추억이 남아 있는 자리에 세워진 이 학교. 특수학교인 이곳이 2년 전부터 나에게는 생활이 되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서류 작성 작업만 했던 내게 본격적인 업무 지시가 내려졌다. 이 곳의 아이들은 정리정돈이나 청소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일을 도맡으라는 지시였다.
여기에 덧붙여 제초작업, 나무전지, 쓰레기장 정리, 행사 준비 및 뒤처리, 특수교육보조원이 배정되어 있지 않는 반에 점심시간 식사지도까지 다양하고도 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단연 화장실 청소였다. 학생들 중 대변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고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거나 심지어 화장지나 장난감, 교구를 통째로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 변기란 변기는 다 막아버리는 녀석까지 있었다.
그 뒤처리는 내가 해야 했고 이러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나에겐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아이들 교육내용이 무엇인지 대충은 알 수 있지만 그 때는 화장실 용변지도가 교육내용인지 몰랐다. 듣는 사람에겐 우습게 들릴 테지만 나를 한동안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했던 일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같은 자리-서편 1층 화장실 세 번째 칸-에 같은 형태로 변기가 아닌 바닥에 굵직한 뭔가가 떡하니 똬리를 틀고 있었다.
변기에 일을 보지 않고 바닥에 일을 보는 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굵던지……. 딱딱하게 굳은 대변을 치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치울 때 냄새도 지독하지만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여기저기 물어보니 내가 오기 전부터 그 일 때문에 행정실 주사님이나 도우미들도 무지 고생했다고 했다. 나는 절대로 이 일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탐정이 되기로 했다.
하루 30분 간격으로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면서 일을 보는 아이를 찾아내려 했다.
그러기를 3주 째. 매일같이 바닥에 일이 벌어져 있지만 일을 보는 아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퇴근시간 이후에 사건이 일어난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퇴근시간 이후엔 기숙사생만 학교에 있으니 당연히 범인은 기숙사생들 중 있다는 결론이었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과 공동의 노력 끝에 범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의 집에 있는 화장실은 재래식 화장실이었고 학교에서도 집에서 해왔던 방식 그대로 충실히 일을 봤던 것이다. 사건 전말을 알고 나니 그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 하나 가르쳐 준 적이 없었으니 어떻게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었겠는가?
사감선생님과의 협력으로 차츰 바닥에 일을 보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결국 반년 만에 완전히 아이에게는 새롭기만 했던 변기에 적응하게 되었다. 보통 아이들은 하나하나 세세히 알려주지 않아도 보면서 터득하는 부분이 크지만 이 곳의 아이들 중 대부분은 우리가 보기에 아주 쉽고 간단한 행동일지라도 아주 작게 나누어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모방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보고 배워라’, ‘넌 왜 그걸 못하니?’ 하는 것은 이 곳 아이들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말일 것이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한 아이의 교육에 일조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형님! 고맙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생활해 본 것은 처음이라서 근무초기에 크게 느꼈던 낯설음에 반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지는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잊지 못할 많은 추억들을 만들게 되었다.
지금은 졸업을 했지만 작년 학생회장이었던 준호와 있었던 일 또한 나에게 웃음을 짓게 하는 아이들과의 추억 중 하나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던 준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측은하고 불쌍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큰 데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했었다. 평소 준호는 아주 씩씩하고 동생들을 잘 보살피는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내가 근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준호의 덩치와 풍기는 분위기에 약간은 조심을 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