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나에게 말을 걸었고 관심을 보였지만 겉모습 때문에 나의 경계는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준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중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힘겨루기를 하다가 지면 손아랫사람 부리듯 한다는 말에 나는 겁을 먹었다.
머지않아 녀석이 나에게 힘겨루기를 신청해왔고 혹시나 피하게 되면 여러 사람 앞에 봉변을 당할 것 같아 마지못해 그에 응했다. 나보다 덩치가 컸기 때문에 지게 될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내가 이기게 되었는데 준호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바로 돌아간 이후 토라져서 며칠동안 나랑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더니 “이제부터 형님이라 부르겠습니다.”하며 90도로 인사를 정중히 하지 않겠는가.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공손히 손을 모으며 연신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준호에게 알았다며 얼른 돌려보내 버렸다.
그 후 내가 일하고 있으면 도와주기도 하고 말동무도 되어주었다.
그 날 이후 본교 행사가 있던 날, 준호와 힘겨루기 이긴 것에 대한 감사할 일이 일어났다. 경남에 있는 특수학교 교장선생님들이 모이게 되었고 전에 본교에 계셨던 교장선생님도 오시게 되었다. 교직원과 악수를 하고 행정실을 나와서 교장실을 가려고 할 때, 준호가 복도 끝에서 아주 밝은 표정으로 뛰어오면서 “어이! 윤교장!”하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 말은 더 가관도 아니었다. 어깨동무를 하고 어깨를 토닥거리더니 “잘 있었나?”라고 말했다. 그 때 복도에 있던 사람들 모두 진땀 뺐었다. 준호의 머릿속의 상하관계는 나이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오직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런 준호가 작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과시간 이후에는 시간이 남아 내가 일하고 있을 때 곧잘 와서 도와주곤 했다. 수업과정 중에 직업교육이라는 것이 있어서 인지 망치질이나 나사를 조이는 일은 가르쳐주질 않아도 솜씨가 제법이었다. 하지만 덩치에 비해서 준호는 인내심과 집중력이 부족했고 작업이 20~30분 정도 길어지면 금방 지겨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으며 급한 성격 탓인지 성급하게 공구를 다루다 손을 다치는 일도 몇 번 있었다.
그럴때 마다 공구 잡는 법이나 자세 등을 교정해 주었고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는 사이 2학기가 되었고 준호에게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일반학교와 마찬가지로 초등 6년, 중학부 3년, 고등부 3년 총 12년의 교육을 받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능력의 차이가 너무 커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취업할 정도의 능력을 갖추기 힘들고, 설사 갖췄다 하더라도 일반인 취업도 힘든 실정이라 아이들이 취업할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준호에게 잘되었지만 학교에서는 제 1호 취업생이 생겨서 더욱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 취업을 하고 한 달이 지나서 갑자기 준호가 학교에 왔다. 말을 들어보니 안타깝게도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임금도 받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안타까웠지만 준호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우리 아이들과 같은 장애우들도 더 나은 미래가 있지 않을까.

이전까지 나는 장애를 가진 아이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너무 다르고 능력이 한참 부족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아이들과 보낸 2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매일 보는 아이들이었지만 그것을 깨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의 시계는 우리들의 심장박동을 더욱 빠르게 만드는 재깍재깍 소리를 내는 시계와 달리 천천히 옆을 돌아볼 여유를 주는 시계인 것이다. 천천히 가는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커가고 있다.
생활에서 보는 이 나이가 되면 당연히 이것을 해야 한다는 시각이 아니라, 이 아이들의 천천히 더디게 가는 시간 속에서 이 아이가 무엇을 해왔는지 우리는 거기에 맞춰주면 되는 것이다.
은혜학교에 와서 생활한 2년 동안을 돌아보면 장애아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또한 일상에서 장애아를 만날 경험이 없었던 사람이 편견에 휩싸여 불쑥 한 마디 내뱉을 때 내가 경험했던 것에 비추어 긍정적인 말 한마디 해 줄 수 있는 여유와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