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깊은 둘째 녀석은 “아버지, 그냥 군대 입대 하겠습니다. 너무 힘이 들지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라고 마지막 말을 뒤로 한 채 입영하여 유격훈련을 마치는 날 죽었단다. 너무나도 많이 참고 힘든 훈련에 임했기에 지금도 그 고개에 둘째아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단다. 후배들이 보고 배우라고....부모로서 얼마나 가슴을 칠 노릇인가?
내 자식이 죽었는데, 심장이 아프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결국은 데리고 가더니 죽게 만들었다고, 내가 못나서 죽게 만들었다고...
내 자식이 죽었다면 난 저분들처럼 침착하게 병무청을 향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아들을 가슴에 묻은지 6년의 세월이 지났기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둘째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훈련을 받다가 그리되고 보니 막내는 못 보내겠다고. 똑같이 심장, 폐 등이 아픈데 또 죽으면 어쩌겠냐고, 누가 책임을 질거냐고....
맞습니다. 책임 질 사람이 없습니다. 군대에서 죽어 공상사유가 되면 국가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 혜택을 받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개뼈다귀같은 답변이겠습니까? 저 또한 이런 답변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화가 치밀었습니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군대에서 죽는 인원이 일반 사회에서 죽는 인원보다 훨씬 적은데, 뭘 유별나게 저러시나? 이렇게 생각하면 답이 없다.

내 가족이 이런일을 당했다고 생각해보자. 병무청에서 근무하는 내가 어찌 대응해야 할른지. 또 한시간 정도가 흘렀다. 이젠 나와 부모님들 사이에 인간의 정이 통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휴~ 긴 시간동안이었지만 사태가 진정된 것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한달뒤로 잡혀있는 입영날짜를 조정해 드릴 일만 남았다. 내가 면제는 마음대로 시켜드릴 수 없지만, 연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본인이 원하는 시점에 입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이건 이 분들이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특혜가 아닌데도 부모님들은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했다. 3시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난 그 날 집에 돌아가서 몸살을 했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얼마뒤 서류를 가지고 오셨고, 청장님과의 특별상담도 이뤄졌고, 검사전 모든 징병전담의사들이 모여 질병상태를 사전검토하고 검사가 진행되었다.
다른부위는 특별히 이상이 없고, 폐부분이 문제가 있어 중앙신체검사소로 정밀검사가 의뢰되었다. 한달뒤 중신검에서 소동이 일어났단다. 다리꼬고 앉아 물건 취급 하는듯한 의사들의 태도에 마음이 상하실대로 상하셨단다. 난동(?)에 경찰까지 출동하고... 검사를 마치고 아버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속이 상해 한잔 했수다. 휴~” 긴 한숨과 적막함이 감돌았다. 내가 더 이상 뭐라 답할 수 있겠는가. 왜 조금만 더 측은지심의 마음을 갖고 민원인을 대하지 못하는걸까? 내가 그 민원인과 같은 경우를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내가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닌것에 감사하고 좀 더 정으로 대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면제는 되지 않았다.

6개월 정도가 지났다. 2005. 12. 28.(조경근 청장님이 퇴직하신 다음날이라 기억이 난다.) 부부가 나를 찾아오셨다. 이젠 가족같다. “병무청은 소리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병무청직원들 총으로 다 쏴~ 죽이고 나도 죽고 싶지만, 재득씨 때문에 참는거요.” 우와~ 무슨 이런 영광스런 말씀을. 가시는 길에 또 덕담을 해 주셨다. “꼭 청장 되시오”
내 평생 생각날 그런 분들이다. 6월 현충일날. 국립현충원을 방문하실거라고 하신다.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리실 그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해온다. 병무청하면 비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는 세대들의 생각을 바꿔줄 책임도 지금 우리들에게 있고, 병역의무를 이행하다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감싸안을 사람도 바로 우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나? 나한테 왜그러나? 라는 생각을 하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부지런히 민원인과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