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6월,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전투훈련장.
대열을 지어 구보를 하고 있는 머리 위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이날 구보 목표는 전투훈련장
50바퀴. 거리로 따지면 거의 25킬로미터 정도 되었습니다. M16 소총을 든 단독군장 차림으로
이 정도의 거리를 뛴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군가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면서 동기생들은 서로에게
힘을 주고자 했습니다. 스물 서 너 번째 바퀴를 뛰고 있었습니다. 앞 줄에 있는 동기생의 군복에는
소금기가 배어 이상한 지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은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이 고통의 순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군가는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다 소대장 후보생이 ‘마흔’을 외치는 소리가 의식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나는 스물 몇 번째 바퀴에서
마흔 번째까지 의식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나는 이 시간 동안 나를 떠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달리기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경험이 몇 년 후 내가
가는 ‘길’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독일어 교관으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후보생 때 알게 된 달리기의 재미를 계속
느끼고자 아침마다 뛰었습니다. 전투체육의 날에는 혼자서 기지 외곽을 뛰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두들
이해하지 못했지요. 하긴 저 자신도 달리기의 재미를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요. 갈수록 긴 거리를
뛰는 것이 즐거워졌습니다.
제대하고 나서 조선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도 달리기는 계속 되었지요.
우연히 마라톤대회에 일반인도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42.195km. 분명 나에게는 커다란 모험이고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95년 가을 춘천마라톤에서 완주했습니다. 눈물이 나올 만큼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가슴에 밀려
오는 감동은 다른 어떤 운동을 통해서도 얻지 못할 큰 것이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일상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행복, 마라톤을 하면서 느끼는 감동을 저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어졌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달리기 보급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라톤클럽도 만들고 대회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인생의 ‘길’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달리기 관련 회사를 만든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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