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가장 괴로웠던 일은 임무를 수행하고 원대 복귀하는 것이었다. 선임병들은 밖에 오래 있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했고, 후임병들도 선임병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그 싸늘한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게다가 군 생활의 대부분을 홍보활동을 하면서 보낸 만큼 나는 파견지에서의 유능한 병사였지만 복귀하면서 각종 훈련, 초병 임무 등에는 아주 서투른, 이른 바 고문관이었다.
그런 불만과 고민들이 누적됐고 결국 상병 때 폭발하고 말았다. 공연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날, 모든 것이 너무도 두렵고 괴로운 나머지 위병소 앞을 맴돌다 부대로 복귀하지 않은 것이다. 탈영이라는 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셈인데, 다행스럽게도 그날 밤 위병소 앞 여관에서 마음을 가다듬어 결국 다음 날 부대로 들어갔다.
의외로(?) 별일이 없었다. 연병장 다섯 바퀴 돌기라는 아주 간단한 벌을 받은 후 간부님과 면담 시간을 갖게 됐다. 그때 나는 이제까지 가슴속에 품어왔던 것을 모조리 고백했다. 그랬더니 그분께서는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시며 “앞으로는 애로 사항이 생길 때마다 바로 말해달라”고 운을 뗀 후 “병사의 고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더 크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이었다. 내 마음이 변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 선·후임병들도 원대 복귀할 때 따뜻하게 대해준 것 같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을 스스로 복잡하게 만든 것이었다.
탈영 혹은 그 이상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군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병사들에게 내 경험을 거울 삼아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중·고교생 시절 정말 큰일로 느껴져 고민했던 일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금의 고민들이 사실은 간단한 대화 또는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혼자 고민하지 말라. 여러 사람과 얘기하다 보면 해결점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괴로운 기억도 있지만 즐거운 추억도 적지 않았다. 휴일이면 내무반을 돌아다니며 내가 작업에 참여했던 군 홍보 영화를 틀어주면서 촬영 과정·영화 내용 등을 설명해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모두들 신기해 하면서 나를 격려해주곤 했다. 그때 느꼈던 영화의 매력이 훗날 ‘복수혈전’을 찍게 한 원동력이 됐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 병역 기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부 연예인들을 볼 때마다 인생을 멀리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군 생활을 통해 얻는 것도 많은데, 입대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
내 경우에도 군에서 때를 기다리는 법, 체력의 중요성, 여자의 소중함(?) 등 많은 것을 배웠다. 영화의 매력을 알게 됐으며 제대 몇 달 전부터 매일 산에 올라가 큰소리로 발음 교정 훈련을 해 지금의 나를 만드는 기초를 닦기도 했다.
군 생활을 뒤돌아보면 비록 이름은 잊었지만 생각나는 얼굴이 적지않다. 나이는 두 살 아래면서 만나기만 하면 지루한 인생 강의를 해 원대 미귀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던 선임병, 후임인 내가 파견을 자주 나가는 바람에 병장 때까지 청소 걸레를 잡아야 했던 걸레 선임명….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부디 건강하기만을 빌 뿐이다.

(중앙M&B刊, ‘성공하고 싶다면 군대에 가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