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사실 우리의 소시민적 생활 속에서도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는 말이 있듯, 옳음보다는 강함이 정의로 나타나는 부분은 수없이 많다. 쿠데타 역시 성공하면 영웅이요 실패하면 역적이 된다. 작은 도둑은 좀도둑이요, 큰 도둑은 큰부자라고도 한다. 이런 논리로 그녀는 전쟁을 일으킨 패자(일본)를 전범이라고 낙인 찍는 것은 승자(미국)의 힘에 의한 괘씸죄를 단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은근슬쩍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이 이겼다면 어떤 만행을 저질렀다해도 전범은 되지 않았을테니, 전범 처리는 비합리적인 처사라는 뜻일까?
그러나 너무나 아픈 모습들, 아프다 못해 오랫동안 불편한 장면들, 무장해제한 시민 이마에 이유없이 총을 쏘아대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노인을 휠체어채 들어 고층 베란다에서 떨어뜨리고, 불과 몇 년 사이에 한 민족을 반이나 말살하는, 인간이라는 존엄성을 지닌 생명체를 장난감처럼 마구 짓밟아 파괴하는 그런 끔찍한 살육의 장면을 보면서도, 전쟁은 전쟁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그녀가 영웅들의 이야기만 깊이 좇다가 그만 평범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살짝 잊은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로마사만큼 일본의 현대사는 꼼꼼하게 공부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그녀의 논리에 그럴 듯한 면이 없지 않으므로 마음을 너그럽게 가져 다시 생각해본다 하더라도, 그 말이 피침략국이었던 영국이나 프랑스, 혹은 동남아인이 아닌, 하필이면 전범처리에 가장 비협조적인 일본인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제 전쟁은 전쟁 수뇌부들만의 문제를 떠나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희생자들의 대다수가 일반인들인만큼 그들 하나하나의 각성이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중동 문제가 심각하다. 이왕 유태인 얘기가 나왔으니 그 얘기를 더해보겠다.
알다시피 유럽인들이 유태인을 미워하게 된 원인은 예수 고발에 있다.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된 이래 시민사회가 성숙하기 전까지 유럽 사회에서 유태인들은 거의 악마 취급을 받아왔다고 한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은 타락한 민족이었다.
유태민족은 1세기 로마에 멸망당한 후 국가 없는 유랑생활을 해야했고 유럽 각국의 핍박을 받았다. 마녀사냥의 1차 희생자는 유태인들이었으며, 음악 ‘Sunrise Sunset’으로 유명한 뮤지컬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역시, 러시아에서 자행된 역사적인 유태인 핍박 사건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사실 때문에 19세기 말부터 유태인들은 구체적으로 나라를 재건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스필만의 아버지가 자기네가 그렇게 참혹하게 당하는데도 미국에 사는 동족들이 정부를 움직여 전쟁에 참전토록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이 때쯤이면 벌써 상당한 자금이 모였고, 나라를 세울 실행단계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대의 인물 히틀러가 나타난 것이다. 누구보다도 대중의 마음을 잘 읽을 줄 알았던 그는 선동정치의 달인이었다. 그런 그가 국민들에게 독일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했고, 많은 것을 지켰으며,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는 인종론자로써, 모든 인종은 우열이 분명하여 열등인종은 아무리 교육을 하고 환경을 개선해 주어도 열악한 성격이 바꾸어지지 않으므로 멸종되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유태인과 슬라브족을 증오했는데, 그 개인적인 이유야 어쨌든 유태인을 미워하는 유럽적인 전통에다 독일의 최고를 꿈꾸는 국민적 허영심, 더욱이 유태인 재산을 강제적으로 게르만족의 것으로 만든다는 경제적 이기심이 한데 뭉쳐 가공할만한 유태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앞에서 이 영화를 슬픈 보고서라 썼을 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힘없이 삶을 유린 당한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형편 없어질 때는 그 어떤 짐승보다도 더 잔혹하고 맹목적일 수도 있다는 절망감에서의 슬픔이다.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이, 고귀한 영혼을 지닌 인간이란 존재가 저렇게까지 야만적으로 추락할 수 있단 말이지. 몇몇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히스테릭한 광폭성으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간 요즘이다. 가깝게는 9.11 테러사건이 원인이지만, 조금 멀게는 1차세계대전 때 영국과 프랑스가 팔레스타인을 앞에서 이용하고 뒤에서 친 배반의 역사, 게다가 2차대전 후엔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세력이 이스라엘에만 유리한 처리를 함으로써 아랍인의 분노를 산데서 악연이 시작한다. 이로 인해 생긴 이 정치적 상황은 이제 쉽게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종교적 피해자였던 유태인들이 이제는 종교가 다른, 그들을 핍박했던 유럽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무슬림들에게 싸움을 걸고 있다는 것……. 인간 구원의 종교가 어떤 목적을 갖고 집단화 되어 맹목적인 떼거리주의로 변하면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 살상의 무시무시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종교의 또다른 모습인 듯 하다.

한편 세계 시민들의 전쟁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데 전쟁은 결국 또다른 전쟁을 부른다는 것, 강한 것이 무조건 정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무엇보다도 개인의 평화로운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쩔 것인가. 최대한 이성을 갖고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지혜로운 결말이 나기를 바랄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