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군은 꿀맛과도 같은 달콤한 휴식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시작되었다. 한시간쯤 흘렀을까? 발목에서부터 무릎까지 타고 오르던 통증이 이내 허리를 향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발한발 내딛을수록, 너무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하였고 내 이마와 손은 땀으로 범벅되기 시작하였으며 나는 통증을 잊으려 몽롱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마음속으로 군가도 부르고 기도도 하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이로 악물린 입술은 불어트고 얼굴은 빗물 머금은 달 마냥 두두둥 부었고 결국 앞서 걷던 동기에게 들키고 말았다. 내 고집을 아는 동기였기에 안쓰러운 마음을 참으며 조용히 진통제를 건네어 주었고 나는 고통이 너무커 4~5 알을 한번에 삼켰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내 오른다리는 왼쪽 다리에 의지하며 질질 끌려 한걸음씩 힘겹게 내딛었고 그렇게 힘든 순간 정말로 못 걷겠다는 말이 목구멍에 다다랐을때쯤 구름속에 가려진 달빛 한줄기가 나의 가슴에 와 박혔다.

“그래... 이 느낌.. 언젠가 느껴본 느낌인데... 왜 여태껏 잊고 지냈었지?”어렸을 때 밤하늘 가는 달빛만 비춰지는 냇가에서 행군하는 군인 아저씨들의 모습을 보며 강인한 군인이 되자고 결심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때였을까? 한줄기 가슴에 박혔던 달빛은 어느덧 내 수호천사가 되어 무기력하게 서있는 내게 손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잊지마.. 지금 네가 기억하고 있는 그때를 그리고 지금을... 포기하지마! 지금 네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 봐 !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아! 지금 고통스럽다고 더는 못 해낼 것 같다고 두려워 하지마. 그럼 넌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될거야!
자! 내손을 잡고 군인이 되고 싶어한 그때를 떠올려봐, 자! 어서!”그때였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통증은 여전했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저기 저 어두운 구름속에 숨은지 오래였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내게 그런 용기가 어떻게 생겼을까 싶다. 그렇게 멍하니 한걸음 한걸음 내 딛을 때 마다 떠오르는 건“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이었다.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군인이 될 수 없고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속에 안도하며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월급쟁이와 같은 의미를 두고 지낸다면 그힘든 훈련을 마친 이유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 군복을 입고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없어 내 자신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갑자기 더 이상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루로 건너가 다리미를 꺼내들고 방상외피의 깃을 꼼꼼이 다렸다. 전투복을 다리며 다짐했다. 초심을 잃지 말자고,. 그리고 현재 내가 가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고 그때 그시절 한걸음 한걸음 힘들지만 정확히 내딛었던 그때처럼 강해지자고 다시금 다짐해보며 빳빳이 다려진 전투복을 보며 오랜만에 크게 웃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