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아빠의 물건이 많이 없습니다. 옷장에는 엄마 옷이 가장 많고 책장에는 나의 책이 대부분입니다.
옷이 많은 엄마는 구두도 역시 많고, 책이 많은 제 방에는 장난감 역시 많습니다.
집안 어느 곳을 봐도 아빠의 물건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딱 한가지 아빠의 물건이 가장 많은 곳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아빠의 양말 서랍장입니다.

우리 아빠는 양말이 아주 많습니다. 아빠께서 군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훈련을 한 번하고 오시면 빨래걸이엔 아빠의 초록색 양말들이 오징어처럼 죽 늘어져 있습니다.
엄마께서 “아빠 양말 참 많지?”하시면 나는 “아빠는 지네인가 봐.”하고 웃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다 똑같은 아빠의 양말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고 하십니다.
왜 양말을 보고 가슴이 찡할까?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빠의 발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빠의 발이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발가락도 헐고 뒤꿈치도 까지고……
아빠는 여름에는 무좀으로, 겨울에는 동상으로 고생하고 계셨습니다.

아빠는 작전 과장입니다.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전쟁이냐면 어떻게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지 늘 작전을 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엔 아빠가 작전 과장이라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싫습니다.
아빠가 너무 바쁘셔서 여행도 못 가고 주말에도 늘 부대에 가시고 집에서도 계속 울리는 휴대폰 때문에 속상합니다.
지난 아빠, 엄마의 결혼기념일에는 음식이 막 나오려는 순간에 아빠께서 급한 연락을 받고 부대에 가셔서
음식을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나는 아빠와 축구도 하고 싶고, 외국 여행도 하고 싶은데
왜 그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에는 아빠가 당직을 서시는 날 이어서 엄마와 나는 아빠 얼굴을 보러 부대에 갔습니다.
그런데 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빠의 사무실이 너무 낡았기 때문입니다.
벽의 페인트는 벗겨지고 아빠의 책상은 고물 같았고 텔레비전은 아주 옛날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이런 곳에서 일하고 계셨다는 것이 놀랍고 또 슬펐습니다.

집에 와서 엄마와 나는 느낀 것이 참 많았습니다. 매일 늦게 오시는 아빠께 그것도 낡은 사무실에서 새벽부터 일하시는
아빠께 투정을 부린 점이 너무 죄송했습니다. 엄마도 마음이 너무 아프시다며 아빠가 우리를 위해 고생하시는 것을
절대 잊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우리 아빠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나중에 크면 우리나라를 위해 군대에 가야한다고 하십니다.
난 총쏘는 것도, 산에서 자는 것도, 축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빠는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아주 소중한 일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몸도 튼튼하고 마음도 튼튼해야한다고
하십니다. 아빠 같으신 분이 계셔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이제는 아빠의 양말들을 보며 지네 같다고 놀리지 않기로 마음먹고
아빠의 양말을 개어보고 아빠의 고생을 느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며 나도 10년 후에 멋진 아들이 되어 우리나라를 지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나는 우리 아빠가 군인이라는 점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