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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사촌 오빠는 용감한 해병대

우리 큰집은 부산에 있다. 명절이나 집안 잔치가 아니면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런데 몇 달 전 집안에 큰 잔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큰집

식구들이 대구에 왔었다. 사촌 오빠가 군대에 입대한다고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해도 명절이면 편하게 같이

놀던 오빠가 갑자기 군대에 간다니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촌오빠가 군대에 간다고 하니 할머니는 대견해하시면서도 몹시

섭섭해하셨다.

 

평소 감정 표현이 없으시고 무뚝뚝한 할아버지도 오빠의 등을 자꾸 두드리며 서운해하셨다.

“아이고, 그새 다 커서 군에를 간다고, 그래 어디로 갈라고.” “네, 그냥 육군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래, 육군이 제일 안전하고 편하제. 잘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라.”

방으로 들어가신 할아버지는 하얀 봉투 하나를 들고 나오셨다. 봉투에는 할아버지가 직접 쓰신 편지와 용돈이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할아버지는 서운한 마음과 걱정을 담은 편지를 써 오신 것이다.

 

할아버지가 직접 편지를 써 주실만큼 군대에 가는 일이 큰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며칠 뒤, 우리 가족은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은 사촌오빠가 육군이 아닌 해병대에 지원했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걱정할까 봐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할머니는, “남자는 군대에 가야 남자가 된다더니 벌써 남자가 다 되었네.” 하시며 대견하다, 대견하다 하셨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일부러 어른들 걱정 끼치지 않게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 대견하다는 뜻이었다. 지금 사촌

오빠는 4개월째 우리나라 바다를 지키며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20세 이상의 남자는 반드시 군 복무를 해야하는 국방의 의무가 있다. 6•25전쟁이 끝난 지는 6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크고 작은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휴전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 예로, 연평도 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연평도 해전은 1999년 6월 15일과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인근에서 남북한군이 서로 폭격을 하며 싸운 전쟁이다. 그리고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이라는 함정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46명의 젊은 군인 아저씨들이 희생되었다. 연평도 폭격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이 대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가한 사건이다. 이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리고 19채의 집들이 파손되고 산불이 발생하였다. 그동안 이런 싸움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그렇게 전쟁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런데 사촌 오빠가 해병대에 입대한 후로는 북한군이 군대 훈련하는 모습만 봐도 긴장이 된다.

 

또 서해에서 남북한 군인이 대치를 했다는 뉴스만 봐도 걱정이 된다. 사촌오빠가 저 위험한 곳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촌오빠가 이 나라를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들면서 오빠의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우리 사촌오빠를 포함한 우리나라 군인들은 국방의 의무를 열심히 해내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나라를 지키는 그 굳건한 자세는 정말 존경스럽다. 비록 나는 여자라 군대에 가지 않지만, 학생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싶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꿈을 가져 노력하는 것이 학생으로서 나의 의무이다. 아직 자라나는 학생이지만 의무를 다하면, 나라의 희망이 되어 나라를 지킬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존경스러운 군인들은 오늘도 내일도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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