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학교 친구들과 달리 우리 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등굣길 풍경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아침마다 줄지어 어딘가로 훈련을 하러 가는
군인 아저씨들 긴 행렬을 보는 것과 아침 시간이나 수업 중에도 우렁차게 들려오는 군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우리 학교가
바로 육군 23사단과 이웃이기 때문에 특별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렇지만 사실, 아침 등굣길에 줄지어 지나가는 군인 아저씨들의
모습이 매번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진 건 아니다. 처음엔 그냥 ‘군인 아저씨들이 지나가는구나.’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재작년 12월, 군인 아저씨들의 모습이 나에게 매우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남동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엄마 뱃속에는 또 한 명의 남동생이 들어 있다. 이제 곧 남동생이 둘이나 되는 거다. 엄마랑 차를 타고 등교하는데
또 23사단 군인 아저씨들이 훈련을 받으러 지나가는 걸 보니까 갑자기 우리 지율이와 희망이가 생각났다.
“엄마, 지율이랑 희망이도 군대에 가면 저렇게 아침마다 힘들게 훈련을 받으러 가야 하는 거예요?”
“희망인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걱정하는 거야? 하긴 우리 하은이가 벌써 이렇게 큰 거 보면 시간이 금방 갈 것 같긴 해.
지율이도, 희망이도 아긴데 저렇게 큰 청년이 되어서 군대에 가게 될 거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젠 군인 아저씨들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랑 남동생들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저씨들의 모습이 늠름해 보이면서도 우리 지율이랑 희
망이가 군대에 간다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도 외삼촌이 군대에 가는 날, 엄청나게 많이 울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 동생들을 힘든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아빠, 아빤 지율이랑 희망이 군대에 가는 거 괜찮아요? 텔레비전에 보면 연예인 중에 군대 가기 싫어서 무슨 수술을 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잖아요. 군대에 안 갈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그 날 저녁, 괜히 속상해서 아빠에게 여쭈어보았다. 우리 아빠는 군악대를 나오셨다. 군악대에 들어가고 싶어서 시험을 세 번인가
보셨다고 한다. 군악대는 그냥 악기만 연주하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일반 군대처럼 훈련도 하고 악기 연습까지 해야 해서 많이
힘들었다고 하셨다. 난 아빠가 그렇게 힘든 군대였으니 우리 지율이랑 희망이는 안 보내고 싶다고 말하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
대답은 내 생각과 달랐다.
“아니야, 하은아. 군대에 가는 건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나라를 위해 해야 하는 의무잖아. 아빠도 많은 걸 배웠어. 어떤 상황에서도
강하게 이겨낼 수 있는 의지,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도. 군대에 다녀와 보니 아빠도 우리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감도 더 생긴 거고. 나쁜 방법으로 군대에 가지 않는 건 비겁한 일이야. 하은이는 네 동생들이 그랬으면 좋겠어?”
아빠가 자신 있게 말씀을 하시니 난 정말 내 생각이 잘못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동생들도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씩씩하게 군 생활을
하고 오면 우리 아빠처럼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잘 생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오셔서 공부를 열심히 가르쳐 주시다가 올해 초에 군대에 가신 박주영 선생님 생각도 났다. 선생님도 씩씩한 군인이 되어 우리를 지켜
주고 계실 거로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때, 텔레비전 방송에서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멘트에 난 눈이 번쩍 뜨였다.
‘올해의 병역 명문가 시상식에 가수 비 씨가 MC를 맡아……….’
“어? 아빠, 병역 명문가가 뭐예요?”
“아, 3대 이상 병역을 충실히 이행한 가족에게 주는 상이라고 하던데? 시상식을 하나 보네.”
병역 명문가? 가족 모두, 그것도 3대에 걸쳐 당당하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와서 받는 상이라 뭔가 굉장히 값지고 영광스런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상 욕심이 난 나는 바로 우리 집도 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조사를 해보기로 했다.
“음, 할아버지는 원통에 있는 전방에서 근무하셨는데 증조할아버지는 집안 형편 때문에 군에 가시지 못 했다고 들었어. 하은이가
알다시피 아빠는 군악대에 다녀왔고, 큰아빠는 대학 때 ROTC를 해서 중위로 근무했단다.”
“아, 그럼 우리는 2대까지만 해당하는 거네요? 아깝다. 하지만 괜찮아요. 우리 지율이랑 희망이가 있잖아요.
지율이랑 희망이가 멋지게 군대에 다녀오면 우리도 병역 명문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내 말에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병역 명문가가 되어 상을 받고 안 받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 가족이 이렇게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더 값진 거라고 말이다. 난 내 남동생 둘이 군인이 된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얼마 전 육군 23사단에 초대받아 가서 만난 군인 아저씨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짧게 깎은 머리, 군에서 훈련받으며 더 용맹해진
표정, 힘있는 경례 포즈 등! 예전에 가졌던 군대에 안 보내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새 싹 사라지고 오히려 멋진 군인이 된 두 동생들의
모습이 그려지며 매우 기대가 되었다.
그래, 상을 받고 안 받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힘들다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 진정한 내 마음 속의 병역 명문가 상일 거다. 그런 우리 가족이라면 앞으로 무슨 일이든 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오늘도 훈련 받으러 가는 멋진 23사단 군인 아저씨들을 보며 속으로 중얼 거려 본다.
‘지율아, 희망아! 앞으로 커서 우리나라 지켜내는 씩씩한 군인 아저씨가 되어 줄 거지?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
기대하세요! 미래의 멋진 병역 명문가 가족이 나가신다고요. 하은이네 병역 명문가 가족 탄생을 꼭 지켜봐 주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