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도 놀란 우리나라의 힘
우리 아빠는 군인이다. 나는 아빠가 브라질에 있는 육군대학을 다니는 바람에 7살 때 1년을 브라질에서 살았었다. 더워지기 시작한 5월의 어느 날, 아빠로부터 반가운 메시지를 들었다. 바로 내가 브라질에 살 때 아빠 친구였던 아모림 아저씨가 결혼한 기념으로 한국에 오신다는 것이었다. 아모림 아저씨는 브라질에 있을 때 아빠를 많이 도와주셨던 고마운 아저씨로 결혼하실 분은 일본 사람이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같이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아저씨를 어디로 안내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서울 살 때 신기한 것이 많았던 전쟁기념관에 가자고 했다. 아빠도 기꺼이 동의하셨다. 그런데 정작 전쟁기념관에 가려고 하니 그곳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얼른 컴퓨터를 켜서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전쟁기념관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고 6.25전쟁을 포함해서 우리나라의 전쟁에 대한 모든 것들이 있다고 인터넷에 나와 있었다. 그 정도만 알고 나는 영어실력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아빠 엄마를 믿고 아저씨를 만나러 갔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아저씨라서 조금 설레었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만난 아저씨는 여전히 우리 아빠보다 키는 작지만 수염을 길러서 산타 할아버지 같았다. 아모림 아저씨의 아내 크리스티나는 내가 너무 컸다며 귀여워해 주셨다. 아빠 차로 함께 도착한 전쟁기념관은 사람이 많이 없었지만 화살촉 모양 조각상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내심 아모림 아저씨가 좋아하길 바라며 아빠의 안내에 따라 전시실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아모림 아저씨가 전쟁기념관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금 실망하긴 하였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저씨는 전쟁기념관이 그냥 멋진 장소로만 알고 계셨다고 한다.
나도 가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 석기시대부터 멋진 인형과 전시물들을 보면서 아저씨는 너무 멋있다며 감탄하기 시작하였다. 나 역시 친구들과 소풍을 올 때와는 다르게 멋있게 보였다. 그런데 아빠의 설명에 계속 똑같은 단어가 너무 많이 들려서 아빠한테 물어보니까 그 단어는 영어로 ‘침략’이라는 단어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너무 많은 전쟁과 침략을 받았다.
아모림 아저씨는 너무 놀라면서 브라질은 과거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할 때 거의 전쟁이 없었고 남미 여러 나라와 전쟁이 한 경우가 10번도 안된다고 설명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대한제국 등을 거치면서 당나라, 거란족, 몽골족, 여진족, 일본 등등…….
우리나라는 전쟁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런데 아모림 아저씨의 아내 크리스티나는 특히 일제 식민지 때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자세한 설명과 사진은 처음 본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크리스티나 아줌마는 실제로 일본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왜 그런지 잘 이해는 못했지만 크리스티나 아줌마는 브라질 이민 3세라고 아빠가 나중에 설명해 주셨다.
특히 아모림 아저씨가 놀라웠던 점은 수많은 침략을 이겨내며 대한민국이 경제 10위권 안에 드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나 같으면 지쳐서 쓰러졌을 건데……. 아빠는 이런 아모림 아저씨의 말씀에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국민들이 어려울 때 항상 하나로 뭉쳤기에 이겨 나갈 수 있었다고 대답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기념관 안에 외국과 전쟁을 하는 그림들은 백성들이 모두 함께 싸우는 사진들 뿐이었다.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그림 속사람들의 표정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이 나라를 걱정할 수 있는지 이것이 한국의 힘인가 여러 번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전쟁기념관을 다 돌아보고 나와서 밖에 노란 철판에 많은 외국 사람들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빠는 여기서 외부의 침략을 다 막아냈던 우리나라가 우리 민족끼리 싸울 땐 나라를 지켜낼 힘이 부족했으며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죽었다고 하니까 마음이 아프고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속으로 나는 ‘그렇게 힘들게 뭉쳐서 싸우고 정작 우리끼리 싸워서 나라가 망할 뻔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가끔 우리나라 군인 아저씨들이 외국의 전쟁이나 어려운 일에 나가 도와주는 뉴스를 볼 때마다 ‘왜 목숨까지 걸고 다른 나라를 도와야 돼?’ 하고 생각했었는데 ‘우리도 나라가 위태로울 때 이렇게 큰 도움을 받았었구나!’ 뒤늦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모두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모림 아저씨는 한국의 힘은 바로 사람(페쏘아우) 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어려운 일이 그 나라에 닥쳤을 때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나는 전쟁기념관을 외국 사람과 함께 돌아보면서 내가 친구들과 너무 쉽게 지나갔던 전시실들이 외국인이 볼 때는 얼마나 신기하고 대단한 것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모림 아저씨가 말한 대로 우리나라 조상님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는 평소에 싫었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모두가 잊어버리고 하나로 뭉쳐서 나쁜 사람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동안 아빠가 군인이라서 늘 바쁘고 정든 친구들이랑도 자주 헤어져야 해서 원망하는 마음이 컸었는데 이젠 군인 아빠가 너무 자랑스럽다. 아빠도 나라가 어려울 때 그림에서 봤던 그 군인들처럼 나쁜 사람들과 싸우고 나라를 지킬 테니까
아모림 아저씨와 한강까지 구경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 군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도 나는 전쟁기념관의 수많은 전쟁그림이 머리에 남아있다.
우리 아빠는 군인이다. 나는 아빠가 브라질에 있는 육군대학을 다니는 바람에 7살 때 1년을 브라질에서 살았었다. 더워지기 시작한 5월의 어느 날, 아빠로부터 반가운 메시지를 들었다. 바로 내가 브라질에 살 때 아빠 친구였던 아모림 아저씨가 결혼한 기념으로 한국에 오신다는 것이었다. 아모림 아저씨는 브라질에 있을 때 아빠를 많이 도와주셨던 고마운 아저씨로 결혼하실 분은 일본 사람이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같이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아저씨를 어디로 안내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서울 살 때 신기한 것이 많았던 전쟁기념관에 가자고 했다. 아빠도 기꺼이 동의하셨다. 그런데 정작 전쟁기념관에 가려고 하니 그곳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얼른 컴퓨터를 켜서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전쟁기념관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고 6.25전쟁을 포함해서 우리나라의 전쟁에 대한 모든 것들이 있다고 인터넷에 나와 있었다. 그 정도만 알고 나는 영어실력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아빠 엄마를 믿고 아저씨를 만나러 갔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아저씨라서 조금 설레었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만난 아저씨는 여전히 우리 아빠보다 키는 작지만 수염을 길러서 산타 할아버지 같았다. 아모림 아저씨의 아내 크리스티나는 내가 너무 컸다며 귀여워해 주셨다. 아빠 차로 함께 도착한 전쟁기념관은 사람이 많이 없었지만 화살촉 모양 조각상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내심 아모림 아저씨가 좋아하길 바라며 아빠의 안내에 따라 전시실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아모림 아저씨가 전쟁기념관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금 실망하긴 하였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저씨는 전쟁기념관이 그냥 멋진 장소로만 알고 계셨다고 한다.
나도 가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 석기시대부터 멋진 인형과 전시물들을 보면서 아저씨는 너무 멋있다며 감탄하기 시작하였다. 나 역시 친구들과 소풍을 올 때와는 다르게 멋있게 보였다. 그런데 아빠의 설명에 계속 똑같은 단어가 너무 많이 들려서 아빠한테 물어보니까 그 단어는 영어로 ‘침략’이라는 단어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너무 많은 전쟁과 침략을 받았다.
아모림 아저씨는 너무 놀라면서 브라질은 과거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할 때 거의 전쟁이 없었고 남미 여러 나라와 전쟁이 한 경우가 10번도 안된다고 설명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대한제국 등을 거치면서 당나라, 거란족, 몽골족, 여진족, 일본 등등…….
우리나라는 전쟁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런데 아모림 아저씨의 아내 크리스티나는 특히 일제 식민지 때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자세한 설명과 사진은 처음 본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크리스티나 아줌마는 실제로 일본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왜 그런지 잘 이해는 못했지만 크리스티나 아줌마는 브라질 이민 3세라고 아빠가 나중에 설명해 주셨다.
특히 아모림 아저씨가 놀라웠던 점은 수많은 침략을 이겨내며 대한민국이 경제 10위권 안에 드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나 같으면 지쳐서 쓰러졌을 건데……. 아빠는 이런 아모림 아저씨의 말씀에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국민들이 어려울 때 항상 하나로 뭉쳤기에 이겨 나갈 수 있었다고 대답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기념관 안에 외국과 전쟁을 하는 그림들은 백성들이 모두 함께 싸우는 사진들 뿐이었다.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그림 속사람들의 표정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이 나라를 걱정할 수 있는지 이것이 한국의 힘인가 여러 번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전쟁기념관을 다 돌아보고 나와서 밖에 노란 철판에 많은 외국 사람들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빠는 여기서 외부의 침략을 다 막아냈던 우리나라가 우리 민족끼리 싸울 땐 나라를 지켜낼 힘이 부족했으며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죽었다고 하니까 마음이 아프고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속으로 나는 ‘그렇게 힘들게 뭉쳐서 싸우고 정작 우리끼리 싸워서 나라가 망할 뻔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가끔 우리나라 군인 아저씨들이 외국의 전쟁이나 어려운 일에 나가 도와주는 뉴스를 볼 때마다 ‘왜 목숨까지 걸고 다른 나라를 도와야 돼?’ 하고 생각했었는데 ‘우리도 나라가 위태로울 때 이렇게 큰 도움을 받았었구나!’ 뒤늦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모두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모림 아저씨는 한국의 힘은 바로 사람(페쏘아우) 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어려운 일이 그 나라에 닥쳤을 때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나는 전쟁기념관을 외국 사람과 함께 돌아보면서 내가 친구들과 너무 쉽게 지나갔던 전시실들이 외국인이 볼 때는 얼마나 신기하고 대단한 것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모림 아저씨가 말한 대로 우리나라 조상님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는 평소에 싫었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모두가 잊어버리고 하나로 뭉쳐서 나쁜 사람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동안 아빠가 군인이라서 늘 바쁘고 정든 친구들이랑도 자주 헤어져야 해서 원망하는 마음이 컸었는데 이젠 군인 아빠가 너무 자랑스럽다. 아빠도 나라가 어려울 때 그림에서 봤던 그 군인들처럼 나쁜 사람들과 싸우고 나라를 지킬 테니까
아모림 아저씨와 한강까지 구경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 군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도 나는 전쟁기념관의 수많은 전쟁그림이 머리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