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기
은상 대한민국의 멋진 아버지 조건

“아빠, 내 차례야.” “안돼, 아빠 차례야.”
일요일 저녁,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와 한바탕 리모컨 쟁탈 전쟁이 벌어졌다. 늘 내 말이라면 기분 좋게 오케이를 하는 딸 바보 우리 아빠! 하지만 난 한 가지 양보해 주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진짜 사나이’ 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시간이다.

 

진짜사나이는 연예인들이 군대에 가서 생활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호주인 샘 아저씨와 교포 헨리 오빠의

우당탕 실수담은 남자들의 많은 공감을 부르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보게 됐지만 경험할 수

없는 신기한 군대 이야기에 호기심이 마구마구 생겨났다.

 

“아빠. 행군이 뭐에요? 불침번은요? 아빠는 어디서 군 생활 했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아빠는 LTE 속도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셨다.
“서진아, 아빠는 최전방 양구에서 포병으로 근무했지.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기억이 새롭단다.”
아빠가 군 생활을 한 강원도 양구는 북한과 손만 내밀면 닿을 듯 아주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내무반 문이 안 열릴 정도로 폭설이

내렸었고 발에 피가 나도록 행군을 다녔다고 한다. 또 야간 경계 근무를 서다가 귀신 불을 봤다는 믿지 못할 경험담까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어느새 나는 푹 빠져들었다.

 

“어휴, 또 시작이네. 남자들은 아무튼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밤을 새워요.” 설거지하던 엄마의 잔소리도 뒤로하고 아빠의 강의는

계속되었다. 유난히 추웠던 1993년 겨울, 할아버지께서는 처음 아빠를 면회 오셨다고 한다. 고된 훈련으로 군화 굽이 떨어진 것도 모르고

다니는 아빠를 보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이 낡은 군화를 고치려고 폭설을 뚫고 밤새도록 수선가게를

찾아다니셨다고 한다.

 

아빠는 이 사연을 들려주면서 작년 폐암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또 상병 때인 1994년 여름,
갑자기 북한의 김일성이 죽어서 휴가를 못 나온 특별한 추억담도 들려주셨다. 아빠는 그때 제2의 6·25가 일어나 왠지 다시는 부모님을

못 뵐 것 같아 마지막 편지를 써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남동생 한울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난 군대 안 갈래! 아빠처럼 고생하잖아. 2년 동안 엄마도 못 보고.”
당황한 아빠는 동생을 간신히 달래며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가셨다.
군대에 가는 것은 헌법에서 정한 우리나라 국민의 당연한 의무이며, 군대를 안 가려고 일부러 살을 빼고, 아픈 척 가짜로 병을 만드는

몇몇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임을 꼬집어주셨다.
“아빠, 그런 사람은 더 오래 군대에 있게 하고 가족들 모두 군대로 보내버려야 해요!”
아빠의 말씀에 흥분한 내가 한마디 거들자 아빠는 흐뭇한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이셨다.
우리 집에 함께 사는 테일러 원어민 선생님의 나라 미국은 군대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은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안정되어있기 때문에 의무가 아니라고 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부끄러운 꼬리표를 단 우리나라는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전쟁을 쉬고 있는 것이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에서 아빠만 정식으로 군대를 다녀오셨다. 할아버지께서는 4대 독자라서 면제를 받았고 작은 아빠는 군의관으로 막내 작은

아빠는 ‘코이카’라는 국제 봉사활동으로 대신했다. 가끔 작은 엄마께서는 작은 아빠랑 다투시면 서진이 아빠가 성격이 제일 좋다고 역시

남자는 군대에 갔다와야 철이 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신다. 인내심과 참을성, 끈기, 사회성을 군대를 통하여 배운다는 것이다.

 

오늘따라 성실히 국방의 의무를 다한 아빠가 더욱 멋쟁이처럼 느껴진다. 언제나처럼 현충일이 되면 우리 가족은 대전 국립 현충원으로

참배를 간다. 6·25 전쟁 때 북한군과 싸우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증조할아버지께서 잠들어 계시기 때문이다. 1318! 내가 꼭 기억해야

할 김용희 증조할아버지의 묘비 번호!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증조할아버지의 손녀, 대한민국의 딸입니다. 사랑합니다.”
다가오는 현충일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그리운 할아버지께 내 마음을 담은 편지와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어서 빨리 전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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